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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후기

안녕하세요 뚱딴지네입니다. 오늘은 백무산 시인의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읽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후기를 남겨보려고 해요. 표지의 목판화 같은 그림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게 만드는 시집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붙잡았던 네 편의 시를 중심으로 제 감상을 풀어볼게요. 기차에 대하여 – 우리

백무산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후기

안녕하세요 뚱딴지네입니다.

오늘은 백무산 시인의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읽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후기를 남겨보려고 해요.

표지의 목판화 같은 그림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게 만드는 시집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붙잡았던 네 편의 시를 중심으로 제 감상을 풀어볼게요.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 백무산2025창비

기차에 대하여 – 우리는 왜 이렇게 달리고 있을까

첫 번째로 소개할 시는 「기차에 대하여」입니다.

달리는 기차를 본다 멈추지 않는 기차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는 기차 그만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도 없는 기차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우리의 삶이 그대로 겹쳐 보였어요. 우리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이 기차에 올라타 있고,

지치고 힘들어서 내리고 싶어도 기차는 우리를 위해 멈춰주지 않죠.

시인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기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은 기차의 목적지는 기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기차 밖 어딘가가 아니라 기차 안에, 즉 달리는 그 자체에 있다는 말이 참 서늘하게 다가왔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삶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시는 마지막에 이렇게 묻습니다.

저 기차가 왜 우리에게 있을까 아무도 목적지를 묻지 않을 만큼 우리는 내릴 수 없는 기차를 타고 있다

읽는 내내 저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나는 지금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걸까?" 하고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서 더 오래 머릿속에 남는 시였습니다.

갈 수도 있었던 길 – 선택하지 않은 무수한 나에 대하여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시는 「갈 수도 있었던 길」이었어요.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니,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결국 그동안 내려온 무수한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라고요.

동시에 그때 선택하지 않아서 가보지 못한 무수한 길들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밀려왔습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하는, 답 없는 질문들 말이에요.

후회라기보다는 조금은 애틋한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이었어요.

시인은 그 무수한 가능성들을 억지로 후회로 만들지도, 그렇다고 미화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놓아두는 듯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걸어온 제 길을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지는 시였습니다.

존중 사회를 위하여 – 정말, 열받는다

세 번째 시 「존중 사회를 위하여」는 읽는 내내 화가 났던 작품이에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청소 노동자분들에게 영어와 한문 필기시험을 보게 하고 그 점수를 인사에 반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소 구역과 시설물 명칭 정도는 영어로 쓸 줄 알아야지요 한문으로 쓰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도대체 청소라는 노동과 영어·한문 시험이 무슨 상관인지, 존중이라는 것이 왜 시험 점수로 결정되어야 하는지 어이가 없더라고요.

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청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는 직원 선생님들을 존중합니다 노동자들은 숨은 애국자입니다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겉으로는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시험 점수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이 이중적인 태도가 시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어떤 일을 하든, 누구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깨끗한 공간은 누군가의 노동 덕분인데,

그 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사람까지 깎아내리는 방식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라의 달밤 – 돌아가신 장이어른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신라의 달밤」이에요.

경주 남산 자락의 조용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중년의 부부를 화자가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자세히 보니 아내는 몸이 창백하고 남자가 일일이 덜어주고 옮겨주고 자세를 고쳐주며 챙기는데,

정작 이끄는 사람은 줄곧 남자가 아니라 여자 같기만 했다는 묘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남산에 달이 떠오르고, 그들이 자리를 뜬 빈자리에 화자는 조용히 자신의 "불구"를 마주합니다.

부축해본 적 없는 그것에게 이제 집에 갈까? 말을 걸어보네 나를 부축해 온 나의 불구에게

솔직히 이 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만 돌아가신 저희 장이어른이 떠올랐습니다.

장애인으로, 고아로 평생을 힘들게만 사셨던 분이에요.

제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삶을 버텨오셨을 텐데,

시 속에서 누군가를 부축하고 또 누군가에게 부축받으며 살아온 흔적들이,

그분의 삶과 겹쳐 보이더라고요.

시가 가진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같은 시를 읽고도 각자 전혀 다른 사람과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 말이에요.

마치며

멈출 수 없는 기차 같은 삶을 함께 견디고 있는 누군가,

가보지 못한 길을 대신 걸어가고 있을 또 다른 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깨끗한 공간을 지켜주는 노동자들,

그리고 고단한 삶을 묵묵히 버텨내며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이들까지.

백무산 시인의 시들은 그 '누군가'를 하나씩 불러 세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뜨거워지기도 하고, 조용히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요즘 마음이 좀 지치거나, 내가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 이 시집을 천천히 한 편씩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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