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 시집 후기
안녕하세요? 뚱딴지네입니다. 이 시집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제목 때문에 좀 망설였어요.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니까 뭔가 인생 반쯤 정리한 사람의 무거운 고백록 같잖아요? 푸른 물감이 번진 듯한 표지도 은은하고 깊이 있어 보이고요. 근데 막상 첫 장을 넘기자마자... 완전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고, 어떤 면에서는 귀
안녕하세요?
뚱딴지네입니다.

이 시집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제목 때문에 좀 망설였어요.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니까 뭔가 인생 반쯤 정리한 사람의 무거운 고백록 같잖아요?
푸른 물감이 번진 듯한 표지도 은은하고 깊이 있어 보이고요.
근데 막상 첫 장을 넘기자마자... 완전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고,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까지 한 시집이더라고요.

첫 페이지에 실린 「나의 시」를 읽
는데 바로 빵 터지고 말았어요.
"시가 늘지 않는다
꽃은 저 혼자서도 피었다 지고
송아지도 어미 말을 알아듣는데
시가 늘지 않는다
살다보면 사랑도 늘고 슬픔도 늘고
이별도 늘어가는데
나의 시는 늘지 않는다
인생이 늘지 않는다"
이 부분 읽고 저도 모르게 시집 옆에다 낙서를 했어요.
"느는 건 몸무게 뿐..."
시인은 '사랑도 늘고 슬픔도 늘어간다'고 하시는데, 왜 제게는 원치 않는 것들만 성실하게 늘어가는 걸까요?
그래도 시인의 고뇌 옆에 제 하찮은 고민을 적어놓으니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아, 우리 다 뭔가 잘 안 되는 걸로 고민하며 사는구나" 하면서요.

웃다가 「과분(過分)」이라는 시를
만나서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커피쿠폰을 외상으로 주는 동네 커피 가게
어떤해서든지 오고가는 아침아
울적한 날 술집 간이 가주는 하느님
점심은 먹고 왔는지
남해에서 종일 달려온 택배"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냥 나에게 베풀어주는 소소한 친절들 있잖아요.
동네 카페 사장님의 작은 배려, 멀리서 달려온 택배, 함께 술 한 잔 해주는 친구...
어떻게 보면 평범한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과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고 나니 오늘 온 택배 상자도, 단골 카페에서 받는 미소도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거창한 위로 말고 툭 한마디 던져주고 조용히 사라지는 위로가 필요할 때,
나도 모르게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하지?" 싶을 때,
시집은 읽고 싶은데 너무 난해한 건 피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뭔가 잘 안 되는' 것 때문에 우울한 분들께요.
시인도 시가 안 늘어서 고민하시는데, 우리 정도 고민은 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 — 이상국2025창비